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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것은 논리적 구성 체계인가, 감정의 배설일 뿐인가.
링크된 감정의 난장판에서 요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산모 남편의 주장이다.)
1. 산모가 제왕절개 수술 이후 DIC가 발생했다.
2. 의사는 13시간 동안 그 사실에 대한 인지나 처치가 없었다.
3. 해당 병원 의사는 인근 대학 병원으로 산모를 후송했고 DIC에 대한 처치가 늦은 탓에 사망했다.
4. 피해자(산모)의 남편은 합의금으로 병원에 10억을 요구했고 거절당했다. 이후 그는 병원의 태도와 과실을 문제삼으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5. 그 남편이 아내를 부르며 오열하는 장면과 인터넷에서 자신에게 온 응원 쪽지를 읽어주는 장면을 찍은 방송이 공중파에 방송되었다.
링크된 피해자의 남편 블로그를 살펴보면, 대부분 아기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여성과 저학력층이 감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듯 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서 한국의 현실에서 과실에 대한 보상금으로서 10억을 요구하거나 그것을 그대로 수령한다는 것은 타당하지가 않다.
일반적으로 인간 생명의 가치는 2가지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생물로서의 고유한 내재적 가치', 그리고 특정한 사회의 맥락 내부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다. 생물로서의 고유한 가치는 측정하기 불가능하며 또 그 가치는 생명이라는 절대적으로 유한한 재화에 대한 것이므로 극단적으로 높게 설정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고 실제적 적용의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생명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다. 이 가치는 '사회'라는 인간이 형성한 집단 내에서만 힘을 발휘한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특정한 암에 대한 진단적 기준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진단 툴이 절대적이지 못해서 암이 있는데도 그것을 잡아내지 못할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있다. 그런데, 이 진단 툴의 기준을 좀 더 엄격한 방향으로 조금씩 조절하면 암이 있는데도 잡아내지 못할 오류가 발생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그 대신에 암이 없는데도 암이 있다고 진단될 환자가 증가한다. 그렇다면, 이 진단의 기준은 어느 수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적절할까? 즉, 진단을 강력하게 하면, 암이 없는데도 암으로 진단되어 애꿎은 조직을 제거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대신에 진단 툴의 오류로 인하여 암을 놓쳐 사망하는 사람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적 합리성의 기준에 의한다기 보다는 '적당한' 진단 기준을 설정하는 선에서 '진단 오류로 인한 사망'과 '애꿎은 조직이 제거되는 사람의 고통'이 대등한 양이 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 바로 이런 경우, 암 오진으로 인한 '사망', 즉 '생명의 가치'는 바로 '애꿎은 조직이 제거됨으로 인한 고통'의 덧셈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생명의 값이 고작 조직이 제거되는 고통 따위로 계산되다니! 고귀한 생명을 위하여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지!' 당신은 자신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언급한 이 진단 기준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유방암'의 진단에 대하여 실제로 있었던 논의다. (미국인들은 200명 정도가 애꿎게 유방을 제거하는 위험을 감수한다면 그것이 한 사람의 목숨에 대한 구제와 치환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는 이것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런 사례가 고스란히 사회적 관점, 수준으로 적용이 되어진다면, 그런 경우의 환산되는 목숨의 값은 사회적 기회비용으로 계산되어 지는 것이 '생명의 가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가 교환이 이뤄진다면 정확히 그것의 교환물은 대상물의 가치를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사람은 앞서 언급한 이 2가지 범주를 구분하는 능력이 없다. 링크한 사례에서의 생명의 가치에 대하여 사망한 산모의 남편과 그의 가족들은 10억 남짓 혹은 그 이상이라 생각한다. 놀랍게도 이런 구체적 금액의 제시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라는 기준에 입각해 있다. 10억 요구가 과하다는 반응에 대하여 사람들은 '사람이 죽었는데 10억도 부족하다'는 식의 반박을 보였다. 이것은 '생명의 고유한 내재적 가치'라는 기준에 입각한 진술이다. 이 2가지는 혼재되어 있고 얽혀 서로가 서로를 압박하며 감정의 몰입에 일조한다. 그리고 그 몰입은 자연적 가치가 사회를 압도하는 마치 약육강식의 세계와도 같아져버리는, 약자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된다. (인터넷에서는 더 이상 병원이 강자가 아니다.)
사회적 맥락을 강변하는 이들에 대하여 고귀한 생명의 편에 서서 준엄하게, 모조리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 차가운 사람, 사기꾼, 등으로 매도한다면, 그것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글이라는 것은 논리적 구성 체계인가, 감정의 배설일 뿐인가.
링크된 감정의 난장판에서 요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산모 남편의 주장이다.)
1. 산모가 제왕절개 수술 이후 DIC가 발생했다.
2. 의사는 13시간 동안 그 사실에 대한 인지나 처치가 없었다.
3. 해당 병원 의사는 인근 대학 병원으로 산모를 후송했고 DIC에 대한 처치가 늦은 탓에 사망했다.
4. 피해자(산모)의 남편은 합의금으로 병원에 10억을 요구했고 거절당했다. 이후 그는 병원의 태도와 과실을 문제삼으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5. 그 남편이 아내를 부르며 오열하는 장면과 인터넷에서 자신에게 온 응원 쪽지를 읽어주는 장면을 찍은 방송이 공중파에 방송되었다.
링크된 피해자의 남편 블로그를 살펴보면, 대부분 아기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여성과 저학력층이 감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듯 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서 한국의 현실에서 과실에 대한 보상금으로서 10억을 요구하거나 그것을 그대로 수령한다는 것은 타당하지가 않다.
일반적으로 인간 생명의 가치는 2가지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생물로서의 고유한 내재적 가치', 그리고 특정한 사회의 맥락 내부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다. 생물로서의 고유한 가치는 측정하기 불가능하며 또 그 가치는 생명이라는 절대적으로 유한한 재화에 대한 것이므로 극단적으로 높게 설정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고 실제적 적용의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생명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다. 이 가치는 '사회'라는 인간이 형성한 집단 내에서만 힘을 발휘한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특정한 암에 대한 진단적 기준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진단 툴이 절대적이지 못해서 암이 있는데도 그것을 잡아내지 못할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있다. 그런데, 이 진단 툴의 기준을 좀 더 엄격한 방향으로 조금씩 조절하면 암이 있는데도 잡아내지 못할 오류가 발생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그 대신에 암이 없는데도 암이 있다고 진단될 환자가 증가한다. 그렇다면, 이 진단의 기준은 어느 수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적절할까? 즉, 진단을 강력하게 하면, 암이 없는데도 암으로 진단되어 애꿎은 조직을 제거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대신에 진단 툴의 오류로 인하여 암을 놓쳐 사망하는 사람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적 합리성의 기준에 의한다기 보다는 '적당한' 진단 기준을 설정하는 선에서 '진단 오류로 인한 사망'과 '애꿎은 조직이 제거되는 사람의 고통'이 대등한 양이 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 바로 이런 경우, 암 오진으로 인한 '사망', 즉 '생명의 가치'는 바로 '애꿎은 조직이 제거됨으로 인한 고통'의 덧셈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생명의 값이 고작 조직이 제거되는 고통 따위로 계산되다니! 고귀한 생명을 위하여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지!' 당신은 자신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언급한 이 진단 기준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유방암'의 진단에 대하여 실제로 있었던 논의다. (미국인들은 200명 정도가 애꿎게 유방을 제거하는 위험을 감수한다면 그것이 한 사람의 목숨에 대한 구제와 치환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는 이것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런 사례가 고스란히 사회적 관점, 수준으로 적용이 되어진다면, 그런 경우의 환산되는 목숨의 값은 사회적 기회비용으로 계산되어 지는 것이 '생명의 가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가 교환이 이뤄진다면 정확히 그것의 교환물은 대상물의 가치를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사람은 앞서 언급한 이 2가지 범주를 구분하는 능력이 없다. 링크한 사례에서의 생명의 가치에 대하여 사망한 산모의 남편과 그의 가족들은 10억 남짓 혹은 그 이상이라 생각한다. 놀랍게도 이런 구체적 금액의 제시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라는 기준에 입각해 있다. 10억 요구가 과하다는 반응에 대하여 사람들은 '사람이 죽었는데 10억도 부족하다'는 식의 반박을 보였다. 이것은 '생명의 고유한 내재적 가치'라는 기준에 입각한 진술이다. 이 2가지는 혼재되어 있고 얽혀 서로가 서로를 압박하며 감정의 몰입에 일조한다. 그리고 그 몰입은 자연적 가치가 사회를 압도하는 마치 약육강식의 세계와도 같아져버리는, 약자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된다. (인터넷에서는 더 이상 병원이 강자가 아니다.)
사회적 맥락을 강변하는 이들에 대하여 고귀한 생명의 편에 서서 준엄하게, 모조리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 차가운 사람, 사기꾼, 등으로 매도한다면, 그것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