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2

참조: 이택광과 칼 폴라니 논쟁, 그리고 독해의 문제


한윤형 씨는 나의 '이택광 비판1'이라는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윤형씨의 글은 내가 얼마 전에도 '포식과 용해'라는 글을 통하여 지적한 바 있듯, 논점이 하나로 모아지기 보다는 퍼져나가는 편이고 그에 따라 논쟁이 쓸모 없이 번져나가는 구석이 있다. 

우선, 윤형씨는 내가 이택광의 글, '폴라니, 그리고 인문학의 개입'이라는 글을 비판한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사실, 이택광씨가 '의도했던 바'는 한윤형씨가 이야기한 대로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의도 자체를 생소한 사기성 주장이라든지, 듣도보도 못했던 바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려, 아주 통상적이며 통념적인 의도, 주장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이택광씨의 의도가 그러했다는 사실보다도, 그런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논지의 뒷받침에 오류가 끼어들어가 있으며 그런 오류로 인하여 '이택광씨'의 의도, 혹은 주장을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내가 밝혔듯이 이택광씨 같은 분의 글은 적어도 부분적인 정합성은 차치하더라도 그것들이 모인 전체적인 글의 유기성은 담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했던 것이다. 물론, 한윤형씨가 예시한 바대로 나는 '진화심리학(의 형태를 띈 생물학적 담론)이 온전히 사회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한윤형씨는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우생학이라는 것은 '유전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인간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학문을 뜻한다. 이 범주에는 진화심리학이 속하지 않으며 또한 한윤형씨가 지적했던 바대로의 미국 우생학의 만연이라든지 박정희의 국민을 개조하자는 투의 정책은 진화심리학과 거의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유전자 연구는 한윤형씨가 생각하듯이 '인간종의 발전'을 위한다기 보다는 유전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치유를 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의 유전자 연구는 사실, 몇가지 영역에 거의 국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BRCA라는 유방암 발병 유전자를 피하려고 한다거나 bubble boy라는 ADA결핍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바이러스 운반자를 이용한 유전자 도입술 등이 거의 전부다. 이런 '치료 목적'의 유전자 연구에서 유래한 시술들이 '인간종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인간종의 발전'에 인간에 대한 치료도 속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윤형씨의 발화를 우생학적 경향의 그것이라 판단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한윤형씨는 사실을 현실에서 탈출시켜 관념과 접목시키고 있다. 때문에, 그의 글은 '반론 불가능한 일방적인 주장'이다. 김동춘 교수의 <근대의 그늘>에는 분명히 한윤형씨가 주장하고 있는 바대로의 풍경이 '주장'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김동춘 교수의 서술이 정말로 논리적으로 정당한 것인가, 아니면 사실 서술의 목적인가, 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분명히 한국의 건국 과정에서는 보도 연맹 사건이라든지, 한국전쟁에서의 양민학살 등의 사건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사건들에 대하여 '인종주의'나 '혈통주의'에 의하여 자행되었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전쟁의 광기'나 '반공 정신'에 의하여 촉발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보도연맹, 노근리 사건, 전국적으로 행해진 양민학살 등이 '인종주의'나 '혈통주의'의 근거로 행해졌다고 주장하려면, 그 근저에는 학살을 자행했던 자와 그것에 대한 피해자 간의 혈통, 인종적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양민학살은 그 대상이 공산주의자인가, 라는 범주의 구분이 그리 유효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했다기 보다는 그저 '쾌락'의 목적 혹은 '맹목적 보신의 목적'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현재까지의 사회적 합의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애초에 이런 주장들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사실에 기초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사실은 지나치게 협소한 반면, 그 사실에서 끌어오는 '가치판단'의 영역은 지나치게 광활하기 때문이다.) 한국사에서 인종주의적 편견이 작용한 사례를 보자면, 호남 차별의 경우 정도가 있을 것이다. 많은 지역주의자들이 삼한시대부터,삼국시대, 를 거쳐 오랜 인종적 차이가 있었다고 보고 있고 그로 인하여 인종적, 기질적 차이가 크다고 판단하며 그에 따라 양 지역 사람 간의 결혼을 금기시하는 전통까지도 있어왔기 때문이다.

반면, 윤형씨가 주장하는 전쟁 와중의 일방적인 학살, 반공 정신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에는 그런 사실들이 거의 누락되어 있다. 덧붙이자면, 비단, 전쟁 와중의 경우가 아니라도, 연좌제 등의 사례, 근대 국가의 일체감 형성에 인종주의적 요소가 작용한다, 라는 등의 김동춘 교수의 같은 책에서의 주장들은 근거가 미약하다. 근대국가는 그 구성원들의 일체감 형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위하여 근대 국가가 수립될 때마다 인종주의적 요소들이 새로이 갱신되며 개입될 필요는 없다. 한국의 경우에는 근대국가 수립 이전에도 통일 국가가 1000년, 통일 신라까지 포함한다면, 1500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 고려, 조선 시대에는 외침에 대한 자발적 의병활동들이 있었으며 고려 시대부터 지속되어 온 단군 신앙 등이 (각종 유럽 국가들이 18, 19세 기경에 인종주의를 통하여 이뤄낸 근대 국가 형성을 위한 토대로서의) 이미 근대국가 형성을 위한 일체감 형성을 위하여 충분할 정도로 과잉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48년 근대국가의 수립을 위하여 교조적으로 새로이 인종주의적 요소를 만들어내어 작동시킬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만일 그런 것으로 오해될 요소가 있었다면, 그것은 오히려, '일체감'형성이라기 보다는 구분 짓기라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도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민족을 공산주의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짓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인종주의, 혈통주의적 요소가 개입되었다고 보기 보다는, 반공주의라는 정치적 입장이 강경하여 일단의 반인권적 행위로 까지 번져나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태에 대하여 박노자는 한국은 '국가주의가 민족주의를 압도'한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거듭 말하지만, 설사, 이런 '사실'들이 윤형씨가 판단하는 대로 '인종주의적' 근거에 의하여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또한 우생학이라는 풍조의 만연에 기초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들은 최근 한국에서의 '진화심리학 발호'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별개의 맥락에 기초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한국의 반공 문화의 우생학적 기초(라는 주장)와 2000년대 후반의 진화심리학은 그 배경이 너무나도 다르다. 진화심리학은 내가 이전 글에서 이미 밝혓듯이 2005년 미국인 윌슨이 짓고 최재천이 번역한 통섭이라는 책이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통섭'이라는 개념이 '학문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여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생물학적인 근거가 인간의 욕망이라든지, 본성 성향 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판단은 자연히 인간 개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일관성있는 학문 체계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일군의 학자들에 의하여 크게 환영받았으며 지금도 환영받고 있는 중이다. 이 관점이 사실상, 논리적으로 타당한 관점인 것이 모든 과학자들이 인간의 발생에는 DNA가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절대적으로 작용한다고 관측하고 있으며 심지어 DNA를 'book of life'라 서술하기도 한다. 그러하다면, 이 DNA의 특징을 밝혀내어 인간에 적용시키고 인간의 성향을 밝혀낼 수 있다면, 인간 개체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적 영역에도 적용가능하게 된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의 진화심리학이 서 있는 것이지, 무슨 '행동하는 지식'류의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생학과는 그래서 다른 것이다. 학문이라는 것은 지금껏 관찰된 사실에 기초하여 논변을 전개시켜야 하는 것이지 다른 필드에서 발견된 사실들을 무시하며, '필드간의 대립'으로 치환시키는 것은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하기 위한, 양심적인 학자의 자세가 아니다.

한윤형씨는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아마도 무지의 소산일 것이라 생각된다. 진화심리학은 정치의 문제를 '어떤 제도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가'로 환원한 적 없으며 자연히, 그런 식의 생물학은 존재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은, 거꾸로, 왜 이러한 현실적 조건들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도록 변해온 것인가, 라는 식의 설명이 좀 더 진화심리학이라 불리우는 영역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전자의 영역은 아마도 '사회 비평'에 속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뤄지는 사회 비평이라는 것은 대부분 '가치'와 '가치'의 충돌이며 취향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의 소산, 혹은 그 과정이다. 진화심리학적 사회 비평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 진화심리학이라는 것은 그 '비평'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평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대한 학적 탐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물리학적 사회비평', '영상의학적 사회비평', '재료공학적 사회비평'이라는 규정이 주는 어색함만큼이나 어색한 진술이다. 최재천의 헌재에서의 진술은 한윤형이 이미 지적한대로 자연주의적 오류의 모범적 사례다. 당연히, 최재천이 진화심리학자라고 해서 최재천이 한 사회적 발화들이 모두 '진화심리학적 사회 비평'이 되는 것도 아닐테고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정리하자면, 나는 이택광의 우생학과 경제개발적 패러다임 하에서 현재의 진화심리학과 경제학적 담론이 구성되어 있다는 관점은 무리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부정적 현실을 박정희라는 거악에 접목시키려는 데서 유래한 분명한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윤형의 비판은 그 현실과는 동떨어진 오류 덩어리다. 만약, 이런 것들이 인문학적 글쓰기, 혹은 인문학적 사회비평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사람들이 인문학적인 글에서 설득력을 느끼지 못하는 대개의 이유는 그것이 ‘형이상학적 현학’에 그치기 때문이 아니라 평소에 그런 글을 많이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독해해야 하는지를 몰라서가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나같은 사람의 이러한 글도 다소 쓸모는 있을것이다."라는 한윤형씨의 글에서 유추해 볼 때) 앞선 글에서 내가 언급한 바대로 "대중적 담론의 지평에서 점점 인문학이 밀려나는 것처럼 보이는 대개의 이유는 인문학이 설득력 없는, 형이상학적 현학에 그치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실, 인문학적 글쓰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글쓰기의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그 논리적 근거라고 주장되는 것들이 실상은 개인의 취향에 기반하여 학적 토대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거의 모든 인문학적 토대들은 생물학적 설명을 통하여 보충되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택광씨의 글에서 한문단의 잘못된 용어, 판단의 발견은 그의 전체 글의 논지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오류의 존재는 독해를 어렵게 만들 수 밖에 없어야 잘 쓰여진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윤형씨의 글은 일견, '진영주의'의 면모를 보인다고도 볼 수 있다. 이택광씨가 주장한 전체적 '의도'가 이미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글에 존재하는 오류를 지적하는 행위가 인문학적 독해의 어려움을 대변한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독선적이거나 엘리트적이다. 그러므로, 이런 식의 그의 글은 다소간에도 쓸모가 없다.

ps.첨언하자면, 내가 쓴 글을 내가 반복적으로 읽어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타인이 보는 나의 글에서도 물론 그러하겠지만, 한윤형씨의 글에는 비문과 논리적 비약이 매우 많아서 읽는데 힘이 들었다. 또한, 이런 식의 확장된 논지는 또한 논의를 불편하게 만든다.
by anoxia | 2009/07/03 00:58 | 비판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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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How many cut.. at 2009/07/03 15:25

제목 : anoxia 님 글에 대한 답변
이택광 : 폴라니, 그리고 인문학의 개입 anoxia : 이택광 비판 1 이택광과 칼 폴라니 논쟁, 그리고 독해의 문제 anoxia : 비판 2 이것이 논쟁의 전체적인 맥락인데, 내가 답변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최근에 올린 anoxia 님의 "비판 2"에 대한 답변을 의미한다. 이 논쟁은 새로운 논의로 나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문과계통 학생과 이과계통 학생이 만나서 대화를 할 때에 생기는 문제들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more

Commented at 2009/07/03 18: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에녹시아 at 2009/07/03 22:10
그 냥 평범한 대학교 학부생입니다. 몇년 간 사회주의나 유럽사, 한국사, 이런 부분에 관심이 더 많았고 독서도 그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역사는 그런대로 관심이 있었지만, 역사를 제외한 나머지, 대체적으로 인문학이 무용하다는 사실을 점차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우재 님이 말씀하신 '이런 주제'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다만, 지금 원래 이택광 교수의 글과 한윤형씨의 글이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캐치해낼만한 정도의 '상식적'인 능력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번에 새로 올라온 윤형씨의 반박글도 당연히 포함되고요. ㅎㅎ

이번엔 윤형씨가 너무 잘못된 내용을 자신있게 올려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자신이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 잘 아는 것 처럼 서술하는 것은 대단히 불편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저는 블로그에 글이 잘 못올리고 또 그렇게 자주 글을 쓸 만한 밑천도 없습니다. 우재님께서 매일은 말고, 두세달에 한번씩만 들러주시면 때때로 제가 좋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Commented at 2009/07/06 07: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에녹시아 at 2009/07/06 09:18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겼다느니, 이런 이야기 듣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아, 물론 그 말씀은 매우 감사드립니다.) 한윤형의 논점 흐리기는 이미 그의 첫 글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관찰한 바로는 그런 (어떤 분의 말씀을 빌자면) 뻘드립이 그간 몇몇 이들에게는 그나마 잘 '먹혀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그런 뻘드립을 먹혀 들어가도록 만들어 가면서 논점을 흐리고, 논쟁을 유지하고, 그런 논쟁의 연속으로 유명해지고, 하는 것들의 과정이 전 너무나 웃깁니다.

제가 '뻘드립'좀 그만 하고 핵심에 집중해라, 고 하면서 자꾸만 그 낚시성 논점 흐리기에 성실히 응답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김동춘 교수 예만해도 그래요. 그 책 보면, 그건 박정희의 우생학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앞뒤 문맥을 읽어보면, 근대 국가의 성립 과정에 인종주의가 개입한다는 일반론적인 이야기에 한국 이야기를 짜맞춘 것이거든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대단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 '이미' 박정희의 우생학에 대하여 언급을 했다는 식으로 호도가 되는 것이지요.

하여간에, 현재 이어져 온 사태들이 모조리 그런 식들입니다. 뭘 답변을 했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왜 그게 제대로 된 답변이 아닌지 밝히면, 또 또다른 답변을 하고... 나 원 참..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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