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균열 - '한윤형의 우생학', '이택광의 우생학'

서로 다른 ‘이택광의 우생학’과 ‘한윤형의 우생학’

한윤형은 박정희의 우생학을 논하며 ‘국민을 개조하여 이미 진화한 서구 국가들을 따라잡자는 것이 박정희 체제의 욕망이었다면, 그것을 우생학이라 부르는 것엔 큰 무리가 없다’고 하며 박정희가 우생학적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면, 고작, 박정희 같은 단순한 사례 뿐 만이 아니라 선진국을 따라잡고자 하는 거의 모든 국가는 우생학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 된다. 사실, 핵심적인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서구 국가를 따라잡는다’는 욕망을 우생학이라 규정하기 시작한다면, 애초에 문제가 되었던, 이택광 교수의 글에서의 ‘우생학의 패러다임 내부에서의 진화심리학’이라는 논리적 맥락과 어긋나 버린다. 즉, 한윤형은 용어 사용에서의 자연 과학도 들의 ‘빡빡함’을 지적하는 논리로 용어 사용의 개인적 독점권을 주장하며(그것이 우생학, 진화생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정의라도!) 개가를 올렸지만, 한윤형 자신의 ‘유도리’ 있는 각각의 맥락적 용어 사용은 우생학을 서술자의 사용에 따라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한윤형의 우생학’은 서구 국가들을 따라잡자는 욕망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반해 ‘이택광의 우생학’은 (진화생물학을 유물론적인 속성을 가진다고 한 것으로, 진화생물학은 우생학의 패러다임 내부에 있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욕망의 반영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우생학 그 자체나 또다른 우생학을 의미하는 것이 되며, ‘한윤형의 우생학’과는 차이를 보인다. 왜냐하면, 이택광은 ‘경제개발’과 ‘우생학’을 등치시키며 박정희를 지탱하던 담론을 이 2가지로 칭하고 있는데, 경제개발담론 역시 가장 핵심적으로 서구를 따라잡자고 하는 욕망(한윤형의 말대로)의 발현이었기 때문이다. 한윤형 식의 독해라면, 박정희를 지탱하는 담론에서 경제개발 담론도 우생학적 담론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거나 경제개발담론이 우생학적 담론의 하위에 속하는 담론이 되어야 한다. ‘우생학적 담론’ 중 ‘경제 분과’를 차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가능성 모두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윤형의 우생학’은 ‘이택광의 우생학’ 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로서 그가 이택광을 옹호한 논리는 흐트러진다. 이택광과 한윤형은 서로 다른 주제를 논하고 있었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즉, 한윤형과 이택광의 연결고리는 끊어지기 때문에, 한윤형의 옹호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는 사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잔존한다. 도대체 ‘이택광의 우생학’의 정체는 뭔데?


결론

어쨌든, 박정희의 정책은 기존의 정착된 ‘우생학’이라는 학문의 그것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택광의 우생학’이든, ‘한윤형의 우생학’이든, 그들이 우생학을 무엇으로 정의하든지 그것은 그들의 자유겠다. 하지만, 이것을 ‘진화심리학’이라는 또다른 분과학문과 연계시키고 심지어는 우생학의 패러다임을 운운하며 진화심리학을 그 하부에 두려는 작업은 ‘기존의 우생학’을 차용하여 결부시키지 않고서 불가능하다. 풀어 말하자면, 우생학을 지 맘대로 정의하고 서술하는 것은 자유인데, 그러다 보면 진화심리학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한윤형의 우생학’인 ‘서구를 따라 잡고자 하는 욕망’이 진화심리학과 무관하다는 것이 모범적인 사례다.

한윤형은 ‘이택광의 우생학’에 대하여 도맡아 주석을 달며 옹호했지만, 그 과정은 또다른 ‘한윤형의 우생학’을 성립시켰을 뿐이다. 이택광 뿐만 아니라 (이미 이택광과 괴리된)자신의 논리 모두를 커버하려다 보니 우생학이 ‘서구를 따라 잡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형태의 거대한 괴물이 되어 버린 셈이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하나다. 이택광의 애초 우생학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틀렸다는 것. 이 상황에서는 어떤 형태를 띈 옹호든 균열을 일으킬 뿐이다. 교모하게, 근시안적으로 그 균열을 감추는 작업을 취하여도 이택광의 글의 맥락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은 언제든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사실, 촌놈처럼 우생학에 대한 맥락적 사용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며, ‘기존의 우생학’, ‘한윤형의 우생학’, ‘이택광의 우생학’이라고 구분지을 필요도 없다. 우생학은 그냥 하나다. 우생학은 우생학인 것이다. 만약, 이것을 인문학적 특수성이라 논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다만, 그럴수록 인문학이라는 학문의 설득력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기 바란다. 그러니까, 내가 주구장창 말하는 것이다. 서술자 마다 다른 맥락적 사용이라는 허깨비를 주장하려 한다면, 그냥 시를 쓰라는 것. 한윤형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시적 비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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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시아 | 2009/07/05 23:40 | 비판 | 트랙백(3)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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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급진적 생물학자 Rad.. at 2009/07/06 15:47

제목 : 대안사회담론의 진화생물학적 자장?
이택광: 폴라니, 그리고 인문학의 개입 이택광: 박정희와 파시즘 이택광 교수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간단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안사회를 논의하는 과정에 인문학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대안사회 담론의 대표주자라고 생각되는 '진화생물학'과 '경제학'이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칼 폴라니의 인문학적 성격을 지적하며 이택광 교수는 약간의 투정을 부린다. 인문학자이기도 했던 칼 폴라니를 경제학으로 포장해버리고야 만다는 것이다. 확실......more

Tracked from How many cut.. at 2009/07/07 12:50

제목 : 우생학, 진화생물학, 그리고 대중적 진보담론
애초에 김에녹시아 님이 지적한 것은 이택광의 글에서 사용된 우생학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고, 우생학과 진화생물학의 관계를 허황되게 기술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글의 의도가 대략 이런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나의 설명 이후에도 그는 1) 우생학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고, 2) 우생학과 진화생물학은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누가 뭐래?)라는 이유로 이택광이 글을 잘못 썼다는 견해를 고집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글을 두둔하는 사람마저도 1) 대충 무슨 ......more

Tracked from 歲寒時節 at 2009/07/08 02:15

제목 : 이택광, 폴라니, 경제학, 진보 등등
요즘 블로그를 돌아다니면서 본, 은근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이택광의 글들에 대한 관람평 1. 나는 이런 이들을 대체로 '장기판 좌파'라고 부른다. 장기판에서 포를 써서 이기느냐, 차를 써서 이기느냐, 아니면 졸을 움직여 이기느냐, 같은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면서 '제몫'을 다하는 좌파들이 이에 해당한다. 진짜 좌파라면 장기판을 뒤집어버릴 궁리를 해야할텐데, 이 장기판 좌파들은 그 판을 뒤집겠다는 사람들을 말리기 바쁘다. 요즘 갑자기 쇄도하기.....more

Commented by 김에녹시아 at 2009/07/05 23:41
(3) 균열과 (2) 박정희와 우생학은 함께 읽어야 하는 글입니다. 문단도 원래는 섞여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글이 너무 길어져 읽기 불편하겠다 싶어, '박정희'와 '이택광, 한윤형'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누어 따로 올립니다.
Commented by 한윤형 at 2009/07/06 00:46
으헝헝...;; 오랜만에 양민학살 한번 하게 생겼네...-_-;;;
Commented by 김에녹시아 at 2009/07/06 09:25
제목 : 윤형씨에게 관심 투척 - 인문학적 견지를 중심으로

논의 좀 하쟀더니, 양민 학살이니 뭐니. 양민학살 지금 말씀하시는 거 혹시, 우생학적 논지에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윤형씨는 우생학의 패러다임에 내부에 속한(박정희 친구신가요?) 진화심리학의 패러다임의 내부에 속한 블로고스피어의 패러다임에 내부에 속한 티스토리에 복속되어 자신의 노동을 착취당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군요. 헐... 이런 신자유주의자.. 아아, 그것은 하늘에 흩날리는 꽃이 되었다. 이런 에리히 프롬. 어떤 점에서 한윤형은 네크로 필리아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었다. 학살에 대한 찬양. 모든 죽은 것들에 선호가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선호로 퍼져나가는 모습.. 한윤형의 모습은 네크로 필리아 화되는 과정, 바로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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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히 응대하겠고 제 성의껏(제 능력 껏)글을 써놨는데, 예의 좀 갖춥시다. 실제로 님이 절 학살한다고 하더라도 제가 님한테 욕할 일 없어요. 제가 이런 식으로 자꾸 댓글 달면 참 좋으시겠어요.
Commented by 한윤형 at 2009/07/06 12:08
"대충 내가 이렇게 패러디하면 인문학도들이 지껄이는 헛소리들과 비슷한 거지 껄껄껄..." 이라며 엑스터시를 느끼는 모양이군요. 중심적인 논점 자체는 더 논의하면 동어반복이 되구요. 제가 잘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은 이택광 쌤이 스스로 부연설명을 했더군요. 한번 찾아가서 읽어보시구요.

저는 그저 님의 이 장광설에 녹아들어 있는 자잘한 오류들이나 몇 개 집어내고 싶네요. 글쓰면 그때 뵈어요. :)
Commented by 2 at 2009/07/06 01:15
이 정도까지 왔으면 그냥 인정하는 게 낫다..학살한다깝치다가망하면 패가망신한다
Commented by 만리향 at 2009/07/06 02:04
똥개도 앞마당에서는 50점 먹고 들어간다더니...
Commented by 김에녹시아 at 2009/07/06 09:20
만리향/
아까부터 계속 무슨 횡설수설을 자꾸 하시는가요.. 한문장 툭툭 투척하고 소통을 바라시는 것은 아닐테고... 님 무슨 여기서 만족을 얻고자 하는 것 같은데, 음... 그럼 계속 그렇게 하세요. 여기서라도, 만족을 얻으셔야죠. 이 풍진 세상에.. ㅎ
Commented by 2 at 2009/07/07 02:08
처음부터 끝까지 한윤형이 발린거네
Commented by sm at 2009/07/08 20:42
'국민을 개조하여 이미 진화한 서구 국가들을 따라잡자는 것이 박정희 체제의 욕망이었다면, 그것을 우생학이라 부르는 것엔 큰 무리가 없다’ 흠, 아무리 봐도 이 문장에서 한윤형씨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국민을 개조하여'에 방점이 찍히는 것 아닌가요? 국민을 개조해서라도 산업발전을 이루겠다면, 여기에서 우생학의 징후를 읽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에녹시아님의 의도적인 오역인가요?
Commented by 김에녹시아 at 2009/07/10 04:58
sm/

'우생학'의 징후라는 것도 웃긴 말이지요. 그런데, 그 '우생학'의 징후를 그런 식으로 읽어낸다고 하면, 그것이 '진화생물학을 패러다임 내부에 두는 우생학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우생학적 징후'를 마음대로 가져다 붙이는 것은 1차적으로 봐서 그것이 '비유'라고 한번 인정해봅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 '비유'를 다시금 사용하여 '진화생물학'을 패러다임 내부에 두고 있다고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되어버린다는 말이죠.

이런 식의 막무가내 논변을 펼치는 전여옥을 유시민이 개망신준 일은 아주 유명하지요. 의도적인 오역이라기 보다는 '앞뒤 문맥의 자가당착'을 밝히기 위하여 비판을 하는 겁니다.

뭐,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전달코자 하는 전체적 의도가 중요하니, 인문학을 욕보이는 너네들은 개무시하겠다, 라는 식으로 상대방이 나온다면, 토론이 되지 않겠죠. 그런데, 이번에 그 태도로 인해 인문학과 인문학자들에게 모기 다리 만큼이라도 그 준엄함에 피해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건 알아야 겠지요.
Commented by Bloodstone at 2009/08/08 18:35
진보라는 사람들이 가하는 과학에 대한 공격은 한숨이 나올 때가 많더군요.
좋은 글 읽고 링크추가하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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