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우생학

네이버에서 기획하고 있는 지식인의 서재가 이번에 김훈의 서재를 다뤘다. 한국 사회는 박정희 시대부터 공중 보건에 힘쓰면서 우생학적 면모를 드러내보인 바 있는(공중 보건과 우생학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인문학을 배워야지만, 가능한 것이니 여기서 생략하기로 하자.), 고래로 극우적 조류가 휩쓸고 있는 곳인데 그 면모가 김훈의 인터뷰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김훈은 책을 읽는 행위에 관하여, 단순히 '생각의 개조'이라는 목적에 두고 다른 독자들을 억압하고 있다. 책을 읽는 행위의 목적은 '생각의 개조'에도 있을 수 있지만, 말초적 쾌락에도 있을 수 있고 사회를 사는 기술을 습득에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오류들은 박정희의 잔영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박정희의 '공중 보건'에 힘쓰는 우생학'이 김훈과 같은 괴물을 키워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류에 대한 징후는 '생각의 개조'를 전체적 독자의 '독서의 목적'에 대한 합의로 무단, 기습 상정해버리는 우생학적 기반을 통해 인식가능해진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우생학적 면모를 잔뜩 지닌 김훈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언급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명백히 우생학이 진화론이라는 외피 속에 파고 들어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로 작동한다. 이 김훈 인터뷰에서의 백미는 '개조될 수 없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도 없다'라고 언급하는 대목이다. 나찌나 일제의 강제 불임 시술을 연상시킨다. 이 김훈의 우생학에 매몰된 오류는 사실, 과학이 무엇인지만 알지, 인문학에 대해서는 무지하여 '서로 주석 다는' 행위의 진정한 '말초적' 재미를 모르는 오류서 기인한다. 즉, 한국 사회는 박정희의 우생학, 진화론에서 유래한 담론들이 다시금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유통되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반복하여 말하자면, 이 모든 원인은, 인문학에 대하여 무지한데서 발생한다. 그러니까, 인문학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박정희의 우생학적 담론이 진화론이라는 외피를 둘러싼 채 여전히 한국 사회 전반을 배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김훈의 글을 세상에 나고부터, 오래간 읽어와서 그의 글을 통해 어렴풋한 어색함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러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의 제기는 사절한다.

김훈: <근사록>이라는 책을 보면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없다.’ 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니 다독이냐 정독이냐, 일 년에 몇 권을 읽느냐, 이런 것은 별 의미 없는 것이지요. 책을읽는다는 것보다도 그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나 자신을 어떻게 개조시키느냐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죠. 책에 의해서 자기생각이 바뀌거나 개조될 수 없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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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시아 | 2009/08/03 11:19 | 쓰레기캔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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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ㄴㄴㅁ at 2011/08/11 20:22
우생학이라니요? 이상한 논리네요. 저는 김훈의 서재를 읽고 전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당신은 우생학 어쩌고하는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서 억지로 김훈의 인터뷰내용에 갖다붙힌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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