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화론은 국가유기체론과 결부되거나 혹은 우생학과 결부될 경우 폭발적인 힘을 현실에 발휘했다. 독일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사회진화론이 '우생학'과 결합했다기 보다는 국가유기체론과 결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 대하여도 그렇다. 박정희가 정권 유지를 위해 민족주의를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정권을 분석하는데는 '국가유기체론적 사회진화론'이라는 툴이 타당하지, '우생학적' 사회진화론은 그다지 적합하지가 않다. 박정희 정권을 보고 어떤 이는 '우생학적'이라고 판단하는데 그것이 무식에서 나온 이야기다. 박정희를 사회진화론으로 분석한다고 하여 그 사실이 자동적으로 우생학과의 결합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희에게서 사회진화론의 인상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우생학과 연결짓는다는, 이러한 서술은 기본적인 개념의 오류거나 '시적 허용'의 범주에 속한다. 간단히 말해서, 혼자 '시를 썼다'라는 소리다.
우생학은 방법론적 측면에서 두가지로 나뉜다. 어떤 사람은 박정희 정권의 정책들이 positive한 우생학적 방법론에 속한다고 서술했는데, 그 증거로서 여러 보건 정책을 꼽았더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John Glad는 positive한 우생학에 대하여 이러한 서술을 남겼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형질에 대한 출산률을 높이기 위한 금전적, 정치적 자극, 인공수정, 복제 등을 그 방법론으로 본다는 것인데 요점은 '유전적으로 우수한 형질의 확산을 위한 인위적인 조작'이다. 박정희 정권의 정책은 이런 것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 만약에 우생학을 박정희 정권의 그것이라 규정해버리면, 대학 때 그저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소리 밖에 듣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문학적 소양이라든지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학문을 대하는 태도나 그 사고의 엄밀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그것은 이러한 우생학적인 방법론과는 거리가 멀게, 사회진화론(을 인정한다면)과 국가유기체론이 서로간의 결합을 이루며 국가 전체의 성장, 서구를 따라잡기 위한 성장, 등을 지향했지 '열등한 형질을 제거'하거나(negative 우생학) '우수한 형질의 번식을 장려'(positivie 우생학)한 적이 거의 없다. 이택광은 기본적인 개념의 오류를 범했거나 진화생물학과 박정희, 우생학을 연결시키기 위한 무리수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억지로 사회진화론을 매개로 하여 우생학과 박정희를 연관짓고, 또한 그것에 기초하여 무리하게 우생학과 진화생물학을 연관지어 한국의 담론을 박정희에 예속되어 있다고 보고, 인문학자들이 담론을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으로, 그 근거의 빈약함으로 인하여 인문학에 대한 불신이 번지도록 방기하는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인문학자를 자처하는 자들의 '오만한 헛소리'를 읽으면, 인문학의 후퇴가 왜 일어나는지 명확해진다. 이런 자유로운 오류의 확대 재생산들이, 서로간의 주석달기로 그 의미를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야 말로 비로소 그들이 하고 있는 전부가 아닌가, 라는 의심을 그들 스스로가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제안을 하나 하자. 박정희 정권의 사회진화론을 우생학으로 치환시키고 논의를 편하게 가져가고자 한다면, 그런 글은 싸이 다이어리에다 쓰고 포도알이나 받고 좋아하고 있길 바란다.(둘이서 서로 스티커도 좀 붙여주고) 그런 글은 사회적으로 유통되며 소비될 필요가 없고 그럴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처음 부터 아주 간단한 논점이었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니 결국 이런 지점까지 오는 것이다. 대체,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언어영역 100% 받았다는 이야기는 왜 나오는가. 졸렬한 작태다. 관전자들은 저런 걸 보고 마음 껏 웃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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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한윤형 등과의 논의 와중에 여행을 다녀 왔는데 집에 돌아오고 나니 한윤형의 장광설이나 이택광의 논점 흐리기에 별로 대응하고자 할만한 열정이 다 사라졌다. 어차피, 한윤형과 이택광의 우생학 사이의 거리는, 이택광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더더욱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난 만큼 재미도 없어졌다. 사실이 틀린 것은 인정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자꾸만, 희석시키며 다른 논의들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며 설득력도 없어 보인다. 자, 우생학은 굳바이. 이제는 누군가가 또 같은 소리하며 멍멍 거려도 별로 듣고 싶지가 않고 같이 짖어줄 힘도 없다. 이런 논쟁은 한국의 현실이며 열악한 문화적 환경을 방증해준다. 한국의 인문학이 왜 발전하지 못하는지, 흥미로운 관찰거리였다.
박정희 정권에 대하여도 그렇다. 박정희가 정권 유지를 위해 민족주의를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정권을 분석하는데는 '국가유기체론적 사회진화론'이라는 툴이 타당하지, '우생학적' 사회진화론은 그다지 적합하지가 않다. 박정희 정권을 보고 어떤 이는 '우생학적'이라고 판단하는데 그것이 무식에서 나온 이야기다. 박정희를 사회진화론으로 분석한다고 하여 그 사실이 자동적으로 우생학과의 결합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희에게서 사회진화론의 인상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우생학과 연결짓는다는, 이러한 서술은 기본적인 개념의 오류거나 '시적 허용'의 범주에 속한다. 간단히 말해서, 혼자 '시를 썼다'라는 소리다.
우생학은 방법론적 측면에서 두가지로 나뉜다. 어떤 사람은 박정희 정권의 정책들이 positive한 우생학적 방법론에 속한다고 서술했는데, 그 증거로서 여러 보건 정책을 꼽았더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John Glad는 positive한 우생학에 대하여 이러한 서술을 남겼다.
Positive eugenics refers to approaches intended to raise fertility among the genetically advantaged. These include financial and political stimuli, targeted demographic analyses, in vitro fertilization, egg transplants, and cloning. Pronatalist countries (that is, those that wish to stimulate their birth rates) already engage in moderate forms of positive eugenics.
유전적으로 우수한 형질에 대한 출산률을 높이기 위한 금전적, 정치적 자극, 인공수정, 복제 등을 그 방법론으로 본다는 것인데 요점은 '유전적으로 우수한 형질의 확산을 위한 인위적인 조작'이다. 박정희 정권의 정책은 이런 것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 만약에 우생학을 박정희 정권의 그것이라 규정해버리면, 대학 때 그저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소리 밖에 듣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문학적 소양이라든지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학문을 대하는 태도나 그 사고의 엄밀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그것은 이러한 우생학적인 방법론과는 거리가 멀게, 사회진화론(을 인정한다면)과 국가유기체론이 서로간의 결합을 이루며 국가 전체의 성장, 서구를 따라잡기 위한 성장, 등을 지향했지 '열등한 형질을 제거'하거나(negative 우생학) '우수한 형질의 번식을 장려'(positivie 우생학)한 적이 거의 없다. 이택광은 기본적인 개념의 오류를 범했거나 진화생물학과 박정희, 우생학을 연결시키기 위한 무리수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억지로 사회진화론을 매개로 하여 우생학과 박정희를 연관짓고, 또한 그것에 기초하여 무리하게 우생학과 진화생물학을 연관지어 한국의 담론을 박정희에 예속되어 있다고 보고, 인문학자들이 담론을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으로, 그 근거의 빈약함으로 인하여 인문학에 대한 불신이 번지도록 방기하는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인문학자를 자처하는 자들의 '오만한 헛소리'를 읽으면, 인문학의 후퇴가 왜 일어나는지 명확해진다. 이런 자유로운 오류의 확대 재생산들이, 서로간의 주석달기로 그 의미를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야 말로 비로소 그들이 하고 있는 전부가 아닌가, 라는 의심을 그들 스스로가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제안을 하나 하자. 박정희 정권의 사회진화론을 우생학으로 치환시키고 논의를 편하게 가져가고자 한다면, 그런 글은 싸이 다이어리에다 쓰고 포도알이나 받고 좋아하고 있길 바란다.(둘이서 서로 스티커도 좀 붙여주고) 그런 글은 사회적으로 유통되며 소비될 필요가 없고 그럴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처음 부터 아주 간단한 논점이었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니 결국 이런 지점까지 오는 것이다. 대체,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언어영역 100% 받았다는 이야기는 왜 나오는가. 졸렬한 작태다. 관전자들은 저런 걸 보고 마음 껏 웃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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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한윤형 등과의 논의 와중에 여행을 다녀 왔는데 집에 돌아오고 나니 한윤형의 장광설이나 이택광의 논점 흐리기에 별로 대응하고자 할만한 열정이 다 사라졌다. 어차피, 한윤형과 이택광의 우생학 사이의 거리는, 이택광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더더욱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난 만큼 재미도 없어졌다. 사실이 틀린 것은 인정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자꾸만, 희석시키며 다른 논의들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며 설득력도 없어 보인다. 자, 우생학은 굳바이. 이제는 누군가가 또 같은 소리하며 멍멍 거려도 별로 듣고 싶지가 않고 같이 짖어줄 힘도 없다. 이런 논쟁은 한국의 현실이며 열악한 문화적 환경을 방증해준다. 한국의 인문학이 왜 발전하지 못하는지, 흥미로운 관찰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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